이전 다음
불길순례
저자 박영익
도서정가 25000원
페이지수 420페이지
초판발행일 2019년 9월 5일
나라를 지킨 봉수의 혼은 아직 살아있다
 
불길순례 소개

나라를 지킨 봉수의 혼은 아직 살아있다

 

우리나라에서 약 120년 전까지 사용하였던 봉수는 과학적으로 잘 갖추어진 통신 방법이다. 봉수대에서는 낮에는 연기를 이용하고, 밤에는 불빛을 이용하여 정보를 먼 곳까지 신속하게 전달하였다. 신호가 전달하는 내용은 봉수대의 굴뚝에서 올리는 연기나 불꽃의 수에 따라 달랐다. 이렇게 연기나 불빛을 이용하여 만든 신호는 인근의 봉수대에 차례대로 전달되어 한양(현재의 서울)까지 전달되었다. 봉수대는 전국에 600개 이상이다. 높은 산의 정상에 세워졌던 봉수대 자리는 지금의 전파 중계소가 있는 곳과 거의 같다. 선조들을 지켜주던 봉수대. 봉수대를 통해 소곤소곤 옛이야기를 전해주는 불길순례는 우리에게 선조의 얼과 함께 전해 내려오는 기상과 추억을 되짚는다.

학생들과 봉수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다 봉수에 대한 호기심이 생긴 저자는 직접 발로 뛰면서 전국의 주요 봉수대를 돌았다. 옛 자취를 따라 힘든 발걸음을 부지런히 옮겨 다니며 봉수가 위치했던 지리적 위치와 주변의 명소를 자세히 둘러보았다. 일반적으로 문화재 사료의 고증은 딱딱하고 객관적인 정보만 전달하는 것이어서, 전문적 지식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 이외는 다소 흥미로움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봉수의 흔적을 찾아 떠난 목적 이외에 부차적으로 그 주변의 멋진 자연 경관과 서정, 전설 등을 함께 기록하여 흥취를 주고 있다. 책의 중요한 정보만 전달되어 자칫 고체적인 느낌을 주는 것에서 벗어나, 서정적인 감상의 여백을 둠으로써 훨씬 유연하고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게 해 준다. 글의 핵심 요소인 봉수를 비롯하여 자신의 생각을 함께 피력함으로써 불길순례에 반영된 정서와 고뇌의 내용들은 참신하게 다가온다. 책은 사라져 가는 과거 문화재에 대하여 단순한 연민을 떠나서 학술적인 가치의 질량도 풍부하게 내재되어 있다.

책상에 앉아서 쓴 책이 아니다. 일일이 탐문·답사하고 발로 쓴 책이며, 가슴으로 쓴 책이다. 그간 고단했던 노정의 땀 냄새가 지면에 오롯이 묻어 있다. 직접 다니며 쓴 글이기에 찾아가는 노정이 잘 표기되어 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답사가 가능할 수 있도록 하였다.

책 속에는 조부에게서 배운 천자문을 인연으로 한학에 힘쓴 필자의 해박함이 묻어난다.

봉수대와 관련한 지명과 유래에 대하여 조어(造語)의 구성 및 사물이 가리키는 설화적(說話的)인 의미까지 예리하게 파악하고, 독자가 이해하기 쉽게 풀이해 주고 있다. 그 사례로 봉수가 밀집된 간봉 9노선의 경우에 황간 소이산, 문의 소이산, 진천 소이산등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소이‘-의 어원으로부터 비롯한 것으로 규명한다. ‘-는 대체적으로 신분이 낮은 양민 계열의 봉수군들을 가리키는 말로, 일정한 기간 동안 봉수대를 지키며 이들이 부역 또는 군역을 담당한 데서 유래한 것으로 보고 있다. ‘-들이 머물러 있는 곳이 바로 소이산인데, 봉수 담당자들은 일반 주거 지역과 단절되어 외롭게 생활했으므로, 봉수군들의 힘든 삶의 애환을 엿볼 수 있게 해 준다.

이와 함께 지명의 유래를 직접 지역 관청을 찾아 민간 전설의 뿌리를 탐색하기도 했는데, 경남 거창군 남하면 둔마리에 위치한 금귀산봉수에서 금귀’(金貴 또는 金龜를 뜻하는 지명)의 전설의 요소와 거북과 관련된 원형적인 상징의 의미를 살펴보기도 하고, 충북 옥천군에 위치한 월이산 봉수에서는 사랑의 결실을 못 이룬 청춘 남녀의 애틋한 정한(情恨)이 나타나며, 그곳에서 인접한 것대산봉수에서는 삼국사기의 문헌 자료에 입각한 차자식(借字式) 표기를 상세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이 책은 사라져 가는 과거 문화재에 대하여 단순한 연민을 떠나서 학술적인 가치의 질량도 풍부하게 내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앞뒤의 불을 살피고, 행인들에게 귀 기울이고, 불과 연기를 올리고 궂은 날에는 직접 뛰어가 알리던 곳, 국토 어디에 세상 어느 곳에 이처럼 각성된 곳이 있었던가! 산천이 얼어붙은 겨울산정과 온 나라에 기근이 들 때는 어떠했고, 국토가 전란에 휩싸일 때는 어떠했을까? 특히나 지형상 왜구의 침략이 잦았을 우리 국토에 봉수는 나라를 든든히 지켜주는 최전방의 용사와 마찬가지였다.

봉수와 관련된 역사의 기록을 통하여 조상들의 향내가 느껴지는 구성은 단순히 팩트를 떠나 우리 모두에게 민족의 얼을 은은히 느끼게 한다.

그의 끈질긴 집념의 노작으로 과거의 횃불이 꺼지지 않고 면면히 다시 꽃피울 수 있었던 것이 무척 다행스럽다. 이제 그의 발걸음이 머물지 않았던 불길순례를 다 함께 떠나 보는 것이 어떨까.